[화] 16:00 안현심의 시창작 아카데미
롯데문화센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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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번엔 합평에 참석하지 않고, 수정된 시만 받아보았다.
시를 손글씨로 적어보라는 의견이 들어온 김에, 이번 글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해보려 한다.
합평시를 다시 수정해서 제3의 시를 만들어보는 것이다.
사실 모든 수강생들이 합평작을 마음에 들어하진 않는다. 하지만 원작 유지를 고수하는 순간 합평에 힘이 빠진다. 고로 나는 합평에선 어떻게 수정이 되든 얌전히 듣고 있다.
그래야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모은, 무거워진 시를 들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대부분의 합평시가 원작보다는 낫다고 생각하지만, 요번만큼은 합평시를 살짝 틀어보도록 하겠다.
요번에 해보고 괜찮다면 다음번에도 해보기로ㅎㅎ
내 블로그에만 쓰는 것이니까! 괜찮지 말입니다!
1. 원작시 설명
아빠가 돌아가신지 20년이 다 되어간다.
혼자 있으면 쌓여온 세월이 가끔 터져나온다. 시로 쓰니 분출에 가까운 표출이 아니라, 표현으로 형태를 갖춰놓을 수 있어서 좋네. 얼마간 해소가 되는 느낌도 있고.
이 시는 내 첫 작이다. 물론 이번 합평에 내면서 시를 거의 새로 썼지만ㅎㅎ
(원작시) 부재
깜깜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홀로 술을 마신 날에는
당신 생각이 납니다
시간이 멈춘 당신의 얼굴은
늘 지갑 속에 있는데도
이제는 잘 그려지지 않습니다
주인이 바뀐 전화번호는
민폐가 될까 지운지 오래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참 모질고도 두서가 없었습니다
당신의 손을 잡았던 사람에겐 빨리 잊으라 보채고
흔적을 물려받은 내겐 꼭 기억하라고 합니다
나만 양철 심장 나무꾼이라도 되는 양,
꿈에 다녀가시는 날에는
전할 뜻이라도 있나 한참을 곱씹어 봅니다
하고 싶은 말로 산을 쌓았지만
꿈속에서조차 여린 풀잎 하나 건네지 못했습니다
나를 보살펴주었으면 싶다가도
뒤를 돌아보지 않길 바랍니다
이 가득찬 마음을 딛고
당신은 허공으로 자유롭게 날아가세요
(합평시) 자유로워지세요
깜깜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홀로 술을 마신 날은 당신이 생각납니다
당신은 지갑 속에서 늘 웃고 있는데
전화번호를 지운 지 오래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모질고 두서가 없습니다
당신과 손잡았던 사람에게는 빨리 잊으라 보채고
내게는 꼭 기억하라고 합니다
저만 양철 심장을 지닌
나무꾼인가요?
꿈에 다녀가시는 날에는
전할 말이라도 있나 한참을 곱씹어봅니다
하고 싶은 말은 산처럼 쌓였지만
여린 풀잎 하나 건네지 못했습니다
이제 저를 잊으셔도 됩니다
제 기도를 딛고 자유롭게 날아가세요
1. 합평시 뜯어보기
시간이 멈춘 당신의 얼굴은
늘 지갑 속에 있는데도
이제는 잘 그려지지 않습니다
주인이 바뀐 전화번호는
민폐가 될까 지운지 오래되었습니다
↓
당신은 지갑 속에서 늘 웃고 있는데
전화번호를 지운 지 오래되었습니다
우리는 산문에 익숙해서 줄줄 풀어 설명하려고 하는 습관이 있다.
생략, 함축으로 골짜기를 만드는 것이 시의 주요 특징인데 말이지.
하지만 어디까지 생략하느냐 - 요 부분이 참 쉽지 않다.
사람들은 참 모질고도 두서가 없었습니다
당신의 손을 잡았던 사람에겐 빨리 잊으라 보채고
흔적을 물려받은 내겐 꼭 기억하라고 합니다
↓
사람들은 모질고 두서가 없습니다
당신과 손잡았던 사람에게는 빨리 잊으라 보채고
내게는 꼭 기억하라고 합니다
없었습니다 - 는 나도 신경 쓰였던 부분이라 깔끔히 패스.
다만 '당신의 손을 잡았던 → 당신과 손잡았던'
이렇게 되면 동료인지 배우자인지 구별이 묘하게 된다.
게다가 '흔적을 물려받은' 부분까지 없어지게 되면, 나와 당신과의 관계를 유추하기가 어렵다.
시는 해석의 여지를 다양하게 열어두는 것이 좋을 때도 있지만, 이 시는 다양한 의미를 담고 싶진 않아서 고민이다.
나를 보살펴주었으면 싶다가도
뒤를 돌아보지 않길 바랍니다
이 가득찬 마음을 딛고
당신은 허공으로 자유롭게 날아가세요
↓
이제 저를 잊으셔도 됩니다
제 기도를 딛고 자유롭게 날아가세요
뒤를 돌아보지 않길 바란다 → 저를 잊으셔도 됩니다
합평시를 받아보고 가장 놀란 부분.
물론 다음행이 있으니 의미는 명확하다. 그러나 내 생각에 '나를 잊으라'는 산 사람에게 쓰는 말 같은 느낌이다.
이렇게 되면 묘하게 떠난 임을 그리워하는 사랑시같은 느낌도 든다. 난 그러고 싶진 않은데.
그래서 원문을 유지할까 싶은 생각이 슬쩍 들었다.
가득찬 마음 → 기도
내가 원작시를 처음 쓸 때, '기도를 딛고' - 라는 표현으로 썼다가 마음으로 바꾸었다.
'가득찬 마음'과 '허공'으로 대비 효과를 주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역시 처음에 떠오르는 단어가 더 좋은 것일까? 요즘은 부쩍 그런 생각이 드네.
시 창작 강의 첫 날에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시인은 죽을 때 시를 완성해요. 더 고칠 수가 없어서.
원작과 합평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계속 고쳐보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었다.
뭔가 더 들여다보면 또 더 좋아질 거 같은데...
일단 이번엔 여기서 마무리를 하고, 언젠가 다시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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