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소재 선정하느라 애 좀 먹었다.
나는 주로 한 줄기 생각을 잡아다가 시를 쓰는데, 요번엔 생각을 잡아보면 빈 껍데기가 많았다.
역시 생각이 막힐 땐 아르키메데스식 해결법이 최고다.
샤워하고 나오니 갑자기 생각이 나서, 짧게 한 편 쓴 뒤 최소한의 수정만 해서 제출했다.
수정을 많이 해서 내는게 꼭 장점이 있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합평에선 내가 처음 썼던 단어로 돌아갈 때도 있었고.
첫 느낌. 딱 떠오른 그 때가 오히려 좋은 걸까 싶은 생각도 들어서, 이번엔 수정을 많이 하지 않았다.
1. 원작시 알아보기
이번 시는 마지막 연에 중의적인 의미를 실었다.
[턱 끝에 떨림]
닭고기가 질겨서 잘 안 씹히니 턱에 힘이 들어간다. 과수원을 뛰어다녔던 닭의 생명력이 턱에서 느껴진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사람은 감탄할 때 턱이 벌어지지 않은가? 나도 시로써 누군가의 턱에 떨림을 주고 싶은 마음도 담아보았다.
2. 합평시 뜯어보기
합평 과정에서 연 순서도 바뀌었다가, 단어를 넣었다 뺐다 고쳤다, 이런 저런 과정이 많았다.
요즘 파는 통닭과는 딴 판이었다
-1연
이 문장은 원래는 유지되었다. 그러나 문학회 회장님께서 시 후반부 내용이 이 문장을 나타내고 있으므로, 삭제해도 되겠다는 의견을 주셨다.
과연, 1연 다음에 푹 삶아도 질기다는 표현이 나오니까. 요즘 파는 통닭과는 전혀 다르다는 의미는 그대로 전달이 된다.
회장님은 요런 [의미 중복/동어 반복]을 참 잘 잡아내신다. 교수님도 합평 중 회장님의 의견을 자주 물으실 정도.
시간상 화요반 수업을 듣게 된거긴 하지만, 회장님의 의견을 들을 수 있어서 좋다!
잡아다 삶으면 살이 질겨 씹히질 않았다
↓
푹 삶아도 질겨서 씹히질 않았다
-2연
2연 읽을 때 다들 웃으셨다ㅋㅋ
요즘은 닭을 직접 잡지 않지... 그리고 닭고기가 아주 부드럽기도 하고.
수강생분들은 은퇴하신 분이 상당수라, 다들 옛날 생각이 나신 듯 했다.
교수님께서, 없어도 이해에 지장이 없는 단어를 삭제해주셨다.
목숨이 다할 것도 개의치 않고
마당을 가로질러 와 내 발을 쪼던 대담함,
↓
잡아먹힐 줄도 모르고
마당을 가로질러 내 발을 쪼던 부리,
-3연
우선 1행은 너무 비장한 문장이라, 좀 더 실생활에 가까운 문체로 바꿔주셨다.
그리고 문학회 회장님께서 [대담함, 강인한] 등의 한자어를 우리말로 대체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다.
그래서 [대담함 → 부리]로, [강인한 → 거센]으로 수정되었는데, 단어 일부가 잘려나가면서 '거센'은 삭제되었다.
나도 그처럼 강인한 힘을 지니고
누군가의 턱 끝에 떨림을 남길 수 있을까
↓
나도 누군가의 턱에
강한 떨림을 새길 수 있을까
-4연
[강인한 힘]은 '질긴 고기에서 느껴지는 생명력'을 돌려 표현한 것인데, 이러나 저러나 한자어군.
좀 더 간결하게 수정되었다.
+) 교수님께서 3-4연 사이에 뭔가 더 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합평해야 할 시가 더 있는데다, 추가했다가 오히려 망칠 수 있으니 우선은 그냥 두자고 하셨다.
내가 보기에도 의미 전달이 약간 모자라는 듯하다. 그래서 집에 와서 혼자 수정해보기로 했다.
교수님께서 3-4연 사이에 뭔가 더 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던 건, 아마 4연으로 이어질 때 연관성이 약하다는 말씀이었을거라 추측한다. 특별히 어떤 느낌의 문장이 있어야겠다고 말씀하신 건 없다.
나는 마지막 연에 턱에 강한 떨림을 '질겨서 안씹히는 것', '감탄' 요 두 의미가 동시에 느껴져야 의미있는 시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제목을 '인상'으로 바꾸고, 2연과 3연의 위치를 바꾸는 동시에, '내 발을 쪼던 부리'를 '튼튼한 다리'로 바꾸었다. 이렇게 하면 질긴 이유도 전달할 수 있고, 제목으로 인해 마지막 연의 중의적인 의미도 유추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이번에도 평가는 독자와 미래의 나에게~
합평 가기 전에, 이번 시가 너무 짧진 않을까 걱정했다.
교수님이 가을학기 합평 중에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서, 평소에 약간 겁을 먹었나 보다.
'이것도 빼고 싶은데, 이것마저 빼버리면 시가 없어져버려요.'
내 시 없어지면 안돼..!
다행히 뼈대는 잘 남은채로 합평 완료^^
'시 > 시 창작 수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 창작 수업 15 - 모른 채 (0) | 2025.01.10 |
---|---|
시 창작 수업 14 - 외할머니 (1) | 2025.01.04 |
시 창작 수업 12 - 자유로워지세요 (0) | 2024.12.13 |
시 창작 수업 11 - 배추 (0) | 2024.12.04 |
시 - 당신은 알까요 (2) | 2024.1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