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주 간의 가을학기가 오늘로써 끝났다.
문화센터 강의로 가볍게 시작했지만, 오늘 수업에 가는 길엔 마음이 무거웠다.
나는 멀리서 가는 것을 핑계로, 일찍 도착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제 때 도착할 시간에 기차를 타도 지연으로 늦게 도착하는 날도 있었고.
그래도 늘 반갑게 맞이해주시는 분들을 뵈니 왠지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다들 진심이신데 나만 가볍게 생각했나 싶어서.
(원작시) 욕심
비워야 채울 수 있다고 하죠
그게 쉽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세상에는 재미있는 것이 많잖아요
단지에 꿀을 고이 담아두듯
조금만 잡아두면 안되나요?
손 안의 것을 꼭 쥐는 아이 같은 마음이,
우리의 본성이 아니던가요
내 손에 놓아두지 않으면
누군가 먼저 가져갈지도 모르잖아요
내 것이라고 하지 않으면
내 곁에 있지 않을 것 같단 말이에요
이 전전긍긍하는 마음을
당신은 모르고서 하는 소리에요
1. 원작시 알아보기
요즘엔 무언가 대상물을 볼 때, 질투 섞인 눈으로 본 적이 종종 있다. 그리고 그게 두려움에서 나온단 것도 알았고.
이젠 나이를 좀 먹었으니, 내 손에 다 쥐고 싶은 그런 욕심이 생겨도 자제할 수는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내 안엔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 남아있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나서 글을 쓰다가 이런 생각이 들길래, 그대로 시로 써보았다.
2. 합평시 뜯어보기
우선 제목부터. 욕심 - 일상적이고 단순한 언어라, 애교스럽고 보들보들한 시에 안 맞다고 하셨다.
그래서 '당신은 알까요' 로 수정해주셨다.
세상에는 재미있는 것이 많잖아요
단지에 꿀을 고이 담아두듯
조금만 잡아두면 안되나요?
↓
세상에는 갖고 싶은 것이 많잖아요
단지에 꿀을 담아두듯 잡아두면 안 되나요?
- 1연
1. [재미있는 것 → 갖고 싶은 것]
1행의 비운다 - 와 대응되게 수정하였다.
2. [조금만] 삭제
조금만 잡아두면 안돼요..? 라는 애교스러운 느낌이 너무 강해서 삭제.
1연을 읽고서 굉장히 애교가 묻어난다고 하셨다.
하지만 내가 젊어서 괜찮다고 해주셨다ㅋㅋ
손 안의 것을 꼭 쥐는 아이 같은 마음이,
우리의 본성이 아니던가요
↓
손안의 것을 꼭 쥐는 아이 마음이
우리의 본성 아닌가요
- 2연
1. [아이 같은 마음]
~ 같다 라는 직유보다는, [아이 마음] 이라는 은유적 표현으로 바꿔주셨다.
내 손에 놓아두지 않으면
누군가 먼저 가져갈지도 모르잖아요
내 것이라고 하지 않으면
내 곁에 있지 않을 것 같단 말이에요
↓
손에서 놓아버리면
누가 집어갈지도 모르잖아요
내 것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달아날 것 같단 말이에요
- 3연
1. [먼저 가져가다 → 집어가다]
가져간다고 하니 너무 평이해서, '집어가다', '채어가다' 같은 대체 단어가 몇 가지 나왔다.
나는 거기서 '집어가다'를 골랐다.
2. [있지 않을 → 달아날]
'-않다'가 이전 행에도 있으므로, 동어 반복을 피하기 위해 '달아날'로 대체하는 것이 낫겠다고 의견을 주셨다.
이 전전긍긍하는 마음을
당신은 모르고서 하는 소리에요
↓
이 전전긍긍하는 마음을
당신은 알기나 할까요
- 4연
마지막 행이 바뀌고 나서 시 전체의 느낌이 변했다.
연정을 표현하는 듯한 느낌으로 바뀐 것 같단 말이지. 좀 마음에 안 들어...
시일 좀 지나서 다시 들여다봐야겠다. 마지막 행을 유지할지 말지.
(합평시) 당신은 알까요
비워야 채울 수 있다고 하죠
그게 쉽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세상에는 갖고 싶은 것이 많잖아요
단지에 꿀을 담아두듯 잡아두면 안 되나요?
손안의 것을 꼭 쥐는 아이 마음이
우리의 본성 아닌가요
손에서 놓아버리면
누가 집어갈지도 모르잖아요
내 것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달아날 것 같단 말이에요
이 전전긍긍하는 마음을
당신은 알기나 할까요
시가 전체적으로 애교를 부리는 듯하기도 하고, 투정을 부리는 듯하기도 하다.
쓰면서도 그렇단 느낌 들긴 했는데, 왠지 애가 쓴 거 같은 느낌이 드네.
난 애니까! 괜찮아!
요번 시는 아이 같은 느낌이 좀 있지만, 그래도 잘 썼다고 해주셨다.
그리고 이번엔 시구가 삭제된 부분은 없고 일부분 수정만 되었다.
원래 마지막 연 뒤에 뭔가 더 써보려다가 말았는데, 그러길 잘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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