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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 창작 수업

시 창작 수업 11 - 배추

by Bellot 2024. 12. 4.

 

 

[화] 16:00 안현심의 시창작 아카데미

롯데문화센터입니다.

culture.lotteshopping.com

 

가을학기가 끝나고 겨울학기 시작~

수강생 전체가 그대로 재등록 + 1. 

 

재등록을 망설였으나, 교수님의 권유로 한 학기를 더 등록하게 되었다.


(원작시) 배추 

나뭇잎이 빨갛게 물들 때

나는 초록 꽃을 활짝 피우지요

 

빨간 잎이 떨어지면

반가운 발걸음이 와서

내 머리를 묶어준답니다

 

첫 눈이 내린 후

나를 땅에서 뽑아내

하얀 이불 꼼꼼히 덮어주었어요

 

다음날 흐늘거리는 내게

빨간 옷을 입혀주곤

내 긴 머리칼로 감싸주었어요

 

다들 나를 보며 활짝 웃어요

내 치장이 잘 되었나봐요

 

정든 땅을 떠나는 건 아쉽지만

나를 환영해줄 얼굴을 생각하면

깜깜한 땅 속도 견딜 수 있어요


1. 원작시 뜯어보기

김장철을 맞아, 배추 1인칭 시점으로 시를 써보았다.

 

김장배추는 가을 초입에 심어 겨울에 수확한다.

초록 꽃이 밭에 핀 듯 푸릇푸릇하고, 알이 배도록 묶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소금에 절여서 빨간 양념을 묻히지! 

요즘엔 김치 냉장고에 들어가니 땅 속에 묻히진 않지만, 냉장고보단 땅 속이 더 정감있게 느껴져서 마지막 연으로 썼다.


 

그런데 소금을 하얀 이불이라고 표현했다가, 교수님께서 서리 맞은 배추로 착각하시고 말았다.

오해를 바로잡는 과정도 있고 해서, 합평에 시간이 좀 걸렸다ㅎㅎ

 

다행히 수강생 분들이 의견을 많이 내주셔서, 김장이라는 큰 틀은 유지된 채로 표현 정도가 수정되었다.

 


2. 합평시 뜯어보기

나뭇잎이 빨갛게 물들 때

나는 초록 꽃을 활짝 피우지요

시린 땅을 딛고 서 있다가
나뭇잎이 빨갛게 물들어갈 때
나는 초록 치맛자락을 활짝 펼치지요
- 1연

 

봄에 피는 꽃이 가을에 피는 것보다 많다. 

그래서 나는 봄과 대비되도록 배추를 꽃으로 표현했다.

 

실제로 밭에 가서 보면 배추가 한 송이 꽃처럼 펼쳐져 있기도 하고.

 

교수님께서 꽃이 너무 흔하다고 생각하셨는지, 치맛자락으로 수정해주셨다. 

 

치맛자락이라고 하니 뭔가 더 사람같고 좋다.

애초에 배추를 의인화한 것이 시의 주제니까~


 

시린 땅을 딛고 서 있다가 - 요 부분은, 교수님께서 중간 부분에 추가하신 부분이었다.

다른 수강생 분께서 맨 앞으로 옮기는 것이 좋겠다고 의견을 내주셨다.

 

음, 지금 읽어보니 이것도 없어도 될 듯 한데.

우선은 이렇게 두기로! 지금 고치면 똑같은 실력으로 고칠 뿐이니.


빨간 잎이 떨어지면
반가운 발걸음이 와서
내 머리를 묶어준답니다

그러면
반가운 이 와서
허리끈을 꼬옥 매어준답니다
- 2연

 

우선 [빨간 잎이 떨어지면] - 이 부분은 원작시 적을 때도 없어도 되겠다 느꼈다.

꽃이 치맛자락으로 변경되었으니, 머리도 허리끈으로 수정.

 

작물은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 - 라는 말이 있다.

농부가 자주 밭에 가서 작물을 보살펴야 수확도 풍성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반가운 발걸음] 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끈을 매어주는 건 손길이라 그런지, 교수님께서 으로 수정해주셨다.


첫 눈이 내린 후
나를 땅에서 뽑아내
하얀 이불 꼼꼼히 덮어주었어요

다음날 흐늘거리는 내게
빨간 옷을 입혀주곤
내 긴 머리칼로 감싸주었어요

첫눈이 내리면 나를 거둬들여
소금 이불로 꼼꼼히 덮어주고는
부드러워진 팔다리에 빨간 옷을 입혀
긴 치마꼬리로 둘둘 감아주었어요
- 3연

 

서리가 될 뻔한 하얀 이불.

김장 과정을 표현했다고 말씀드렸더니, 수정사항을 몽땅 폐기하시고 새로 수정하셨다. 

 

배추 수확하면 소금에 절여서 다음날 양념하고, 양념이 다 되면 가장 큰 잎으로 배추를 감싼다.

나는 처음에 [머리를 묶는다] - 로 표현해서, [긴 머리칼]이라고 썼다.

 

그러나 1연에서 치맛자락으로 수정되었으므로, [치마 꼬리로 둘둘 감았다] - 라는 표현으로 수정되었다.

 


교수님께서 수정하실 때, [소금 이불 / 빨간 양념]으로 김장을 확실히 표현하셨다.

 

그러나 문학회 회장님께서 다른 의견을 내셨다.

시가 동시적인 느낌이 강한데다, 시 전체에 김장이라는 정확한 표현은 없다.

고로 '양념'이라는 단어는 너무 강한 의미를 갖는다. 

- 라고 하셔서, 결국 양념은 옷으로 되돌아갔다.

 

그대로 남은 소금 이불은 어떡하지.

김장의 의미가 명확하긴 한데, 하얀 이불이라고 하면 소금인지 잘 모를 수 있을 거 같고.

얘는 그대로 두기로!


다음날 흐늘거리는 내게

부드러워진 팔다리에 빨간 옷을 입혀

그리고 중간에 [흐늘거린다 - 흐느적거린다] 로 변경되었는데, 이 부분도 좀 이상하게 느껴진다고 하셨다.

그래서 교수님께서, [부드러워진 팔다리] 로 고쳐주셨다.

 

음, 수정된 연을 보니 깔끔하고 간결해졌다!

 


다들 나를 보며 활짝 웃
내 치장이 잘 되었나봐요

정든 땅을 떠나는 건 아쉽지만
나를 환영해줄 얼굴을 생각하면
깜깜한 땅 속도 견딜 수 있어요

다들 활짝 웃
내가 몹시 예쁜가 봐요
- 4연

연 안에 '나'라는 표현이 두 번 있어서, 하나는 지우면 좋겠다고 회장님께서 의견을 내주셨다.

치장도 예쁘다 라는 동사형 표현으로 고쳐주셨다. 훨씬 깔끔~


이번 시의 가장 큰 문제. 마지막 연

 

사실 맨 처음 교수님께서 마지막 연을 수정해오셨다. 하지만 김장/서리 문제로 폐기.

원본을 그대로 살리자니 것도 어설프다고 하셨다. 

 

그래서 통째로 들어냈더니, 양념 잘 되서 내가 예쁜가봐! 하고 시가 어정쩡하게 끝난다.

김장 배추는 저장까지 해야 의미가 있는데... 끄응...


(합평시) 배추 이야기

시린 땅을 딛고 서 있다가

나뭇잎이 빨갛게 물들어갈 때

나는 초록 치맛자락을 활짝 펼치지요

 

그러면

반가운 손이 와서

허리끈을 꼬옥 매어준답니다

 

첫눈이 내리면 나를 거둬들여

소금 이불로 꼼꼼히 덮어주고는

부드러워진 팔다리에 빨간 옷을 입혀

긴 치마꼬리로 둘둘 감아주었어요

 

다들 활짝 웃네요

내가 몹시 예쁜가 봐요


 

일단 지금은 마지막이 너무 어정쩡하다고 느껴진다.

나중에 들여다보면 다른 생각이 나려나?

 


 

교수님께서 내가 눈이 둥그래졌다고, 수정사항이 기분 나쁠 수도 있지만 우선 받아들여 보라고 말씀하셨다.

 

앗 내 표정이 안 좋았나..?

사실 수정사항이 블로그에 적은 것보다도 훨씬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거기서 어떻게 의견을 내야 할지 몰라서 헤매고, 서리 맞은 배추 이야기가 될 뻔 해서 좀 놀랐다ㅋㅋ

 

아무리 내 시라도 남의 시를 보듯 보라고 하신다.

좀 더 시간이 지나서, 약간 거리가 느껴질 때 다시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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