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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 창작 수업

시 창작 수업 20 - 길 위에서

by Bellot 2025. 2. 13.

입춘과 함께 겨울학기 수업이 끝났다. 우수를 지나 경칩 쯤, 나의 3번째 시 수업인 봄학기를 시작한다. 첫학기(가을)는 괜찮다 싶은 시가 별로 없었다. 겨울학기도 반쯤은 마찬가지였는데, 1월 초에 한 번 세게 아프고 나서부터는 제법 나아졌다. 슬 등단을 생각해보라고 권유하셔서 기뻤다.


원작시 / 합평시


1. 원작시의 배경

사람이 살다보면 남 탓을 하게 될 때가 종종 있다. 그런데 이런저런 원망을 하다보면, 결국 마지막엔 나에게 돌아온다. 그동안 자기비하, 자책이 나를 좀먹는 시간이 적지 않았다. 

 

만약 원망이 사람이 되어서 과거 시간으로 흘러가, 모든 시간대의 나를 하나하나 붙잡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까? 별다른 말을 해줄 수 없을 것이다. 그 시간대의 내가 가진 최대의 정보 위에서 내게 옳다고 생각이 드는 결정을 했겠지, 그게 자의든 타의든.

 

'그 때는 그게 최선이었어'. 이 한 문장에서 출발해 상상을 해보면서 시를 지었다.


2. 합평시 뜯어보기

밖을 내다보던 원망이
갈 곳이 없어 돌아오는 날에는
과거로 흘러든다

밖에 내다버린 원망이
갈 곳이 없어 돌아오는 날에는
과거의 골목으로 흘러든다
-1연

[과거의 골목]

- '과거' → '과거의 골목'이 되면서, 이어지는 연에서도 '길'로 표현되었다.

 

[내다보던 → 내다버린]

- 이렇게 표현해도 신선하다고 의견을 주셨다. 교수님께서는 둘 다 괜찮다고는 하셨으나, 우선 다른 의견이 나왔으니 합평본에 표시해두셨다. 그런데 합평 후에 다른 수강생분께서 원본이 낫다고 말씀하셨다.

 

'감정을 내다버린다'니, 일상에서는 잘 떠올릴 수 없는 표현이다. 다만 여기서는 원망이 '어디 공격 대상 없나' 하고 외부를 쳐다보다가 대상을 못 찾고 내부로 들어가게 된 것이므로, 내가 표현하려는 문맥 상에서는 '내다보던'이 더 어울리는 것도 사실이다. 이 부분은 고민을 좀 해봐야겠는걸.

 

교수님께서는 첫 연이 특히 마음에 든다고 하셨다. 허헛^^


시간 위에 늘어진 집집마다 문을 두드려
지나간 나를 붙잡고 묻는다

굳이 이 길을 골라서
지금을 만들었느냐고

시간 위에 돌아앉은 집집마다
문을 두드려 지나간 나를 묻는다
왜, 이 길을 서성이느냐고
- 2연

원작시 3연이 너무 단순한 표현이라 좀 고민했는데, 더 나은 표현이 떠오르지 않아서 합평에 그대로 내버렸다. 그리고 역시나! 교수님께서 표현이 심심하다고 '길을 서성인다' 라는 표현으로 바꿔주셨다.

 

지나간 나를 묻는다 - '붙잡고' 가 없어졌는데, 집집마다 문을 두드렸다는 표현이 살아있으므로 이해에 문제없다. 다만 원작은 '왜 이 길을 선택했어?' 라는 의미인데, 합평본은 '왜 이 길을 떠나지 못하고 있어?' 라는 의미에 가깝다. 


널 위해 최선을 다했어

너는 최선을 다했어

그리고 마지막 연에서 의미가 달라졌다. 원작은 지난날의 모든 내가 지금의 나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변명과 호소에 가깝다. 합평본은 모든 내가 하는 일종의 자기 위안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분리해서 생각했다면, 합평에서 교수님은 그 분리를 통합시켜 이해하는 느낌이었다.


합평본을 집에 와서 읽어보니, 우선은 원문맥이 일부 사라졌고, 두번째로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마지막 문장만을 놓고 보았을 때는 합평본은 위로, 원작은 호소이다. 2연이 변경된 게 큰데, 원작보다는 표현이 나아서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 된다. 한 행만 바꾸면 될 거 같은데...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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