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16:00 안현심의 시창작 아카데미
롯데문화센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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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학기 수업이 막바지로 가고 있다.
겨울학기 수강신청을 받는 중.
이번 수업날은 아침부터 이것저것 할 것이 많아 바빴다.
올라가는 기차 안에서도 할 일이 있었는데, 졸려서 자버렸다.
여담이지만 이동 때 쓰는 튜브형 목베개 말입니다... 난 아무리 해도 베개를 못 베더라.
의자를 30도 이상 제끼는 게 아니면 고개가 자꾸 앞으로 고꾸라진다.
고속버스 5시간 탔다가 목 꺾이는 줄 알았다. 그래서 웬만하면 기차나 비행기를 이용하는 편.
(원작시) 가시
목에 가시가 걸렸다
보리차 세례에도 끄떡 없기에
한 토막 남은 갈치를 뒤로하고 집을 나선다
의사는 아무 일 아니라는 듯 긴장도 않고
빠진 가시는 손톱만큼도 안 되었다
요 작은 녀석이 이만 원이군.
병원 밖으로 나오니
구름낀 하늘인데도 온 세상이 아름답다
내겐 더 이상 걸릴 것이 없기에
새삼 마주한 행복은
원래도 그 자리에 있었노라 손 흔든다
1. 원작시 뜯어보기
내용 그대로다. 갈치 먹다가 목에 가시가 걸렸다.
보통은 살짝 걸렸다가 넘어가는 편인데, 살면서 처음으로 가시가 안 넘어가더라.
내가 목에 가시 걸렸다고 병원에 가게 될 줄이야...
입 열어보니 육안으로는 안 보이고, 내시경 카메라로 이리저리 살펴보니 보였다.
마취약 뿌려놓고 10분 정도 대기했다. 그동안 침을 한 바가지 흘렸다.
뽑은 가시 보여주셨는데, 내가 삼킬 때 체감했던 것의 반토막이었다. 잘렸나?
빼고 밖에 나오니까 아주 기분이 좋아서 날아갈 듯 했다. 한 시간 정도는 내내 웃었다.
왠지 주몽이 도망갈 때 탔던 명마가 된 기분이었다.
[주몽은 부여 왕실에서 살 때 마구간지기를 했다. 하루는 그의 어머니(유화부인)가 마구간에 와서 가장 빠른 말이 무엇이냐 묻고는, 그 명마에게 '먹이를 적게 주라 / 혀에 가시를 꽂아라' 라고 했다.
주몽은 어머니의 말을 그대로 따랐고, 명마는 점점 마르기 시작했다.
얼마 후 금와왕이 마구간을 보러 왔다. 말을 잘 키운 것을 보고 칭찬하며, 유독 비쩍 곯아 쓸모 없어 보이는 명마를 주몽에게 하사했다.
주몽은 하사받은 말을 다시 잘 키워서(밥 잘 먹여서), 목숨의 위협을 받았을 때 그 말을 타고 후다닥 도망갔다.
도망가서 세운 나라가 바로 고구려.]
(합평시) 가시
목에 가시가 걸렸다
보리차를 마셔도 흔들리지 않아
한 토막 남은 갈치를 두고 집을 나섰다
의사는 아무 일 아니라는 듯,
가시는
손톱만큼도 안 되었다
새삼 마주한 하늘,
더 이상 걸릴 게 없다고 손을 흔든다
온 세상이 아름답다
2. 합평시 알아보기
보리차 세례에도 끄떡 없기에
한 토막 남은 갈치를 뒤로하고 집을 나선다
↓
보리차를 마셔도 흔들리지 않아
한 토막 남은 갈치를 두고 집을 나섰다
1연
[물세례, 끄떡 없다] 등의 단어는 시에서는 잘 안 쓰는 표현이라고, 바꿔주셨다.
사실 원작시 처음 적을 때, [물을 마셔도 흘러가지 않아] 라고 썼다가 [보리차 세례에도 끄떡 없기에] 라고 고쳐 썼다.
결국 합평에서는 맨 처음 형태와 비슷하게 되었다.
의사는 아무 일 아니라는 듯 긴장도 않고
빠진 가시는 손톱만큼도 안 되었다
요 작은 녀석이 이만 원이군.
↓
의사는 아무 일 아니라는 듯,
가시는
손톱만큼도 안 되었다
2, 3연
1. 우선 [긴장도 않고] 이 부분은 삭제되었다.
[의사는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이미 요 부분에 '긴장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교수님께선 의미 중복 부분은 웬만하면 삭제하신다. 의미가 생략된 부분은 쉼표를 넣어줄 수 있다.
사실 원작시를 맨 처음 적은 때는, (능숙하게 빼낸다) 라는 구절이 있었다.
이 부분을 그대로 살려 갔다면 어땠을까 싶네.
2. 가시 앞의 관형어, [빠진 → 빼낸 → 아예 삭제] 를 거쳤다. 빠졌다고 안 적어도, 유추할 수 있기 때문.
그리고 손톱 크기가 사람마다 제각각이지 않느냐? 하고 '손톱'이란 단어에 제기된 이의가 있었다.
[자른 손톱] 이라고 하면 어떤가? 하는 의견도 나왔다.
그러나 [손톱만하다] 는 '굉장히 작다' 라는 의미의 관용구이기 때문에, 이 정도는 괜찮다고 교수님께서 그대로 살려두셨다. 다행..
내가 [손톱만큼] 이라고 쓴 데는 이유가 있는데, 정말로 손가락 위에 올려서 손톱으로 굴려보았기 때문이다.
의사 선생님께서, 사람들이 상처 때문에 '안 빠진 거 아니에요?' 라고 묻는 경우가 있다고ㅋㅋ
본인이 직접 육안으로 확인해야 된다고 손가락 위에 올려주셨다.
3. 가시 이만 원, 여기서 의견이 많이들 갈렸다.
어떤 분은 이만오천 원 - 있는 그대로 쓰는 것이 어떠냐. 라고 하셨는데, 교수님은 오히려 삭제를 원하셨다.
시의 흐름은 [가시 걸려서 아팠다 - 빼서 좋다] 인데, 중간에 '이 작은게 이만 원?' 라고 하니 흐름을 깬다고.
음, 확실히 전체적인 흐름에서는 약간 벗어나는 문장이다.
이 문장으로 아예 다른 시를 쓸 수 있을 정도의, 별개의 주제로 보신 듯 했다.
내 느낀 바를 있는 그대로 담은데다, 약간은 튀는 요소가 있으면 재밌겠다고 생각했는데.
시의 흐름과 행 구성에 대해 생각해볼 거리가 생겼다.
이 연에서 다른 수강생 분들의 의견이 많이 오고 갔다.
제 시에 관심을 많이 가져주셔서 감사해요..!
병원 밖으로 나오니
구름낀 하늘인데도 온 세상이 아름답다
내겐 더 이상 걸릴 것이 없기에
새삼 마주한 행복은
원래도 그 자리에 있었노라 손 흔든다
↓
새삼 마주한 하늘,
더 이상 걸릴 게 없다고 손을 흔든다
온 세상이 아름답다
4, 5연
우선 [병원 밖으로 나오니] 행은 나도 없어도 되겠다고 생각한 부분. → 삭제
그리고 '행복'이라는 단어도 시어로는 잘 쓰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래서 [구름 낀 하늘]을 삭제하면서, [행복]을 [하늘]로 대체한다.
온 세상이 아름답다 - 요 문장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깔끔하겠다고 하셔서, 맨 마지막으로 배치했다.
내 시 수정을 마치고, 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예전에는 어렵게 쓰는 시가 많았어요. (참여시, 비판시, 산문시...)
요즘은 사람들과 얘기를 해보면, 어려운 시에서 담백한 시로 이행한다고들 해요.
우리 젊은 선생님(접니다 젊은이)은 시를 이리저리 꼬아서 주렁주렁 쓰지 않는 점이 좋아요.
이렇게 일상의 순간들을 포착해서 시에 담는 연습을 많이 하면 좋겠어요.
나는 시 한 수에 너무 많은 걸 담지는 않으려고 한다.
시 한 수에 말하고 싶은 것이 여러가지면, 읽다가 응? 하는 지점이 결국 생겨버린다.
한 수에 한 가지 말 - 같은 느낌을 지향하는 편.
그걸 교수님께서 잘 보아주셨다.
시 창작 수업을 들으면서, 나는 전부 한 가지 주제로 짧은 시를 썼다.
다른 분들은 길게도 쓰시는데, 내가 길게 쓰면 주절주절이 되는 듯 했다. 그래서 그냥 느낀 바를 짧게 담는 식으로 썼다. 내 시가 너무 간소하고 담은 의미가 적나? 하고 걱정했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이제 한시름 놓았군.
그래도 언젠간 길이가 조금 긴 시도 써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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