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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하늘에서의 기록 - 플레인 센스 [김동현]

by Bellot 2024. 6. 27.

플레인 센스, 김동현, 2020

 

이번엔 신기한 책을 읽어보았다. 비행기에 관한 내용인데, 사실 처음 표지를 보고는 이해를 못할까 걱정했다. 하지만 전문용어를 나열한 책이 아닌데다 꽤 재미있어서, 한 번 붙잡고 읽으면 50-60 쪽을 금세 읽을 정도였다. 특히 그림 설명이 많아서 읽기 편했다.

 

나는 비행기에 관한 지식이 0 에 가깝다. 탑승객으로서 비행기를 타게 되면, 비행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자세히 뜯어볼 일도 없거니와 궁금해하는 사람도 거의 못 봤다. 

 

하지만 이 책은 탑승객이 아니라 조종사였던 사람에게서 추천받아 읽게 되었다. 조종사가 쓴 책을, 조종사는 어떻게 읽었을까? 그것도 궁금해지는구만.

 

 

 


▣ "Hi, Jack", 하이재킹 

hijacking, 비행기 납치를 말한다. 미 서부 개척 시절에, 강도들이 마차/열차를 추격해 노략질을 하던 것에서 유래되었다. 강도들은 달아나는 마부에게 총을 들이대며 'Hi, Jack' 하고 인사를 건넸다고 한다. 그만 세우라는 의미다. 

 

맨 처음 목차가 하이재킹인데, 이 부분을 읽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영화 하이재킹, 2024

 

 

나는 6월 16일부터 이 책을 읽었는데, 동명의 영화가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심지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사건, 이 책 맨 처음에 나온다. 이 정도면 보러 가야 하나

 


 

난 초등학생 때 기내 소지 물품 규정을 잘 몰라서, 화장품 견본 뜯으려고 들고 간 가위를 뺏긴 적이 있다. 

공항은 보안 검색이 철저한데다 관리/감시 인력도 많다. 요즘 비행기 납치 혹은 테러를 걱정하면서 탑승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예전엔 전수보안검사가 없어서, 하이재킹이 빈번했다는 사실에 꽤 놀랐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하늘 위에서의 안전함은 수많은 시행착오(목숨) 위에서 자리잡았다는 사실은, 비행기 타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었다.

 

 

 


 

 

 

▣ 간결, 명확과 이어지는 두괄식

※ 조종사가 관제사의 지시를 못 들었다면 어떻게 말할까?
Say again. (재송신하라.)

Would you please say that again? (다시 한 번 말씀해주시겠어요?)
↑ 이렇게 말하면 난리납니다.

 

내게 책을 빌려준 사람은 조종사로 근무했었다. 코로나 이후 몇 년 만에 다시 만났는데, 예전보다도 더 두괄식/핵심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특히 긴 서론을 유달리 못 견뎌했는데, 살짝 궁금증이 생길 정도였다. 하지만 내가 서두 긴 사람을 그냥 두듯이, 이 궁금증도 그대로 뒀다. 그리고 책을 읽고 풀리게 되었다.

 


항공교통량이 많은 공역의 관제교신은 숨이 찰 정도로 빨라, 경험이 많은 조종사들도 가끔 교신 내용을 잘 못 알아듣는 경우가 생긴다. 이 때 간결한 표준관제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일상에서 사용하는 공손한 어투의 말을 쓰면 다른 비행기의 교신까지 밀릴 수 있다.

 

조종사에게는 간결하고 명확한 말이, 정시성을 넘어 안전과도 직결될 수 있는 중요한 문제이다. 이 부분을 읽고 나니 긴 서두를 못 견뎌했던 그 모습이 이해되었다. 음, 그래도 내 서론은 잘 들어주는 거 같던데 말이지.

 

 

 

 


 

 

 

▣ 반응적, 선제적, 예측적

국제민간항공기구에서 발행한 안전관리매뉴얼에서는, 전문 조종사의 안전 관리 수준을 3단계로 구분한다.

반응적 수준 (Reactive level)
→ 외부 상황 분석 없이 조종사의 조종 기술에만 의존하는 수준.
출발 경로의 기상 분석도 없이 무작정 이륙해 눈에 보이는 구름을 요리조리 피해 가는, 말 그대로 기상 상황에 '반응' 하는 수준의 비행.

선제적 수준 (Proactive Level)
→ 위험 요소를 미리 인지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수준.
기상상황을 판단해 관제사에게 미리 항로 변경을 요청하는 정도. 에어라인 조종사에게 요구되는 최소 수준.

예측적 수준 (Predictive level)
→ 이륙 전 기상/항로 상황/비행기 상태 등의 정보를 분석해, 상황을 예측하고 대비하는 수준
지상에서 미리 출발 항로의 변경을 요청하거나 출발 자체를 늦추는 등의 대응이 포함됨

 

나는 고등학생 때 '롤러코스터'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기상 악화로 비행기가 롤러코스터처럼 움직인 코미디 영화였다.

 

영화 롤러코스터, 2013

 

기상악화로 인한 착륙 실패와 마구잡이로 흔들리는 비행기, 악조건 속에서의 착륙 경험이 없다는 기장의 솔직한 말이 그대로 송출된 상황 등... 아마 이 영화가 반응적 수준의 조종사를 잘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었을까..? 와중에 오늘 가져온 영화 둘 다 하정우 나와

 

 

 

 


 

 

 

 

▣ 비상 상황에 대한 대처

나는 최근 8년간 비행기를 적게 타진 않았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비상 상황이 일어날거라곤 생각해본 적도 없고, 일어나지도 않았다. 책에서도 항공 사고 발생 확률이 벼락 맞을 확률보다도 낮다고 한다.

 

하지만 이륙 전 기내 안전 방송한다고 승무원이 나오거나 화면이 내려오면, 주의깊게 보긴 했다(고 생각했다).좌석벨트 매고 푸는 법, 비상구 위치, 구명조끼는 비상구 내리기 직전에 당기기 정도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산소마스크 내려오면 무슨 일 일어났는지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착용해야 한다는 건 처음 알았다. 제대로 안 들었나..? 머쓱

 


 

비상 상황에서, 승객은 대처 요령을 꿰고 있어야 하지만 따로 생각할 것은 적다. 승객은 비행기를 움직이는 주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종사에게는 비상회항을 결정해야 할 중대한 문제가 된다.

 

책에는 기내 화재 사례가 많이 실려있었다. 공중에서 즉시 진압되지 않는 화재가 발생했을 때, 조종사에게 주어진 시간은 15분 정도에 불과하다. 

 

미 항공 당국은 화재에 대한 대응을 법으로 의무화했다. 비행 중 화재경보가 발령되면, 기장은 경보의 진위여부를 따지지 말고 지체 없이 비상강하를 시작해 가장 가까운 공항에 착륙해야 한다. 조종사에게 항공 비용, 승객 불편 등을 따져볼 틈을 아예 주지 않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 있어서도 안전이 제일이라는 인식이 법에 명시되었기 때문에, 도대체 어떻게 나는지도 잘 모르는 비행기가 인기있는 교통수단이 되지 않았을까?

 

 

 


 

이외에도 비행기 동체에 숨어든 사람들의 이야기, 보잉/에어버스 항공기 구별법이나 장거리 비행 성공기 등의 흥미로운 내용이 많았다. 다만 비행기 관련 지식이 전무해 관련 내용들은 쓰지 못했다.

 

그래도 다음에 탈 때는 어느 제작사가 만들었는지 정도를 볼 수 있진 않을까..? 기내 안전 방송도 더 유의해서 볼 수 있을테고.

 

간만에 정말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다양한 사건 사고에는 깜짝 놀라기도 했고,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규정이나 절차가 예전엔 없었단 사실에 의아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의미있는 건, 한 사람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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