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일기

솔직함이 최고! - 레드먼드의 앤

by Bellot 2024. 9. 22.
레드먼드의 앤, 현대지성
 

나는 빨간 머리 앤을 참 좋아한다.

집에 1(초록지붕집의 앤), 2(에이번리의 앤)편은 있는데, 3편(레드먼드의 앤)부터는 없다.

나는 내 평생 레드먼드의 앤이 끝인 줄 알았는데, 8편까지 있단 걸 올해 알았다. 이럴수가!

 


작품의 느낌

우선 자연환경 묘사가 굉장하다.

 

솔직히 난 글 읽고 풍경을 머릿속에 생생히 그리는거... 잘 못하는 거 같다. 빨간 머리 앤을 읽고서 느꼈는데, 읽다보면 나아지려나.

자주 등장하는 자작나무나 가문비나무 그런거.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니 머릿속에 그려보기 영 힘들단 말이지.

 


다들 앤이 정말 말 많다 - 라고 하겠지만, 나는 제인 오스틴 소설을 읽고서 생각이 바뀌었다. 앤 정도면 전혀 많은 편이 아니다.

 

나는 요기 인물들의 솔직한 대화가 편했다. 자존심이라는 포장이 조금 있어도, 결국은 따뜻함이 드러나고야 마는게 참 좋달까. 사람의 본성과 감정을 다양하게 풀어내는 것도 좋고.

 

처음 읽으면, 엄격하고 검소한 청교도 문화가 낯설면서도 아기자기하게 느껴진다. 성경 구절이나 시 인용도 많은 편인데, 옮긴이께서 주석을 정성스레 달아두셔서 읽기 편한 번역본이다. 앞으로 5편이나 더 남았다니! 너무 행복하다ㅎㅎ

 


 

솔직함

이례적으로 이번 글에서는, 단 한가지 주제만 이야기하려고 한다. 

바로 '솔직함'이다.

 

앤을 훌륭한 숙녀로 키워낸 마릴라는, 새롭게 6살짜리 쌍둥이를 맡게 된다. 데이비 키스(남), 도라 키스(여).

도라는 얌전한 숙녀같은 아이인데 반해 데이비는 짱구 급의 말썽을 부린다. (예시 : 남의 옷에 송충이 넣기)

 

앤과 마릴라는 나무랄 데 없는 도라보다 데이비를 더 좋아한다. 처음엔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고치는 횟수가 꽤 되는데 말이지? 그런데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데이비는 넘치는 호기심과 장난끼를 표출하는 동시에, 자신의 생각과 감정 또한 날 것 그대로 표현한다.솔직함 안에 깃든 순수함과 사랑이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나보다.

 

철수보다 짱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가 아닐까 싶다.

 

 


 

아, 우리 모두는 진심으로 원하지도 않는 소원을 빌지.
자기 마음을 들여다볼 정도로 솔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니.
그런 기도는 하늘 높이까지는 가닿지 않을 것 같구나.

난 어떤 여자를 용서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었지만 지나고 보니 용서하고 싶어한 적이 없었어.
가까스로 그걸 깨달았을 때에야 비로소 기도할 필요도 없이 그 사람을 용서하게 됐지.

- 밀리의 서재 기준 p.361 _ 제임시나 아주머니의 말

 

 

읽다가 깜짝 놀랐다. 최근에 비슷한 생각을 한 참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 수많은 책과 여러 순간을 거치면서, 나는 조금씩 용서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사실에 대해 자부심도 조금 느끼고 있었고.

 

그런데 어느 순간, 감정이 완전히 씻긴 게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내 마음은 특정 사건들 속에서 익숙한 감정과 생각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문득, '아, 아직 용서하지 못했네. 그런데 별로 용서하고 싶지도 않은 것 같아.'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용서를 받아내고 싶었던 적이 있겠지. 하지만 진심이라고 생각했던 사과가, 나중에 가서는 아니란 걸 알게 되었을 때의 충격이란. 설령 그게 진심이라 해도 즉각 용서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용서보다는, 그 사람의 상황을 '이해'하고 '연민'을 가져보려고 시도해보았다. 용서보다는 하기 쉽고 마음도 편하더라.

 


자기 마음을 들여다볼 정도로 솔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니.

예전엔, 당연한 거 아닌가? 내 마음 내가 모르면 누가 알지? 라고 생각했을 법한 글귀이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로 자신을 알고 있을까? 

320x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