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는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몽땅 시에 넣어보았다.
평소에 요런 고민이 있었다 : 의식의 흐름을 줄줄 쓰면 운문보다는 짧은 산문에 가까운 느낌이 드는데, 보통은 '한 시에 한 주제'를 지향하며 시를 썼지만 이렇게도 써보면 어떨까? - 하는 생각으로, 많이는 자르지 않고 그대로 냈다. 그리고 합평 가서 반쯤 잘렸다ㅋㅋ
이것저것 섞어 놓아서 그런 것일수도 있겠지. (어릴 때 보던 만화, 릴케, 셰익스피어, 남가일몽 등 여러 개 섞어놓음) 과연 좋은 시는 어떤 시일까? 시는 산문의 '줄거리' 느낌보다는 시나리오 상의 '신(Scene)'에 가까운 것 같은데. (같은 장소, 같은 시간 내)
시 한 편에는 얼마만큼의 이야기를 담았을 때 좋을까? 질문이 드는 합평이었다.
1. 원작시
아이
나는 다 컸다고들 하지만
여전히 아이로 살고 싶습니다
빨간 망토를 두른 채 하늘을 날며
바다를 표류하는 침대를 움직여가고 싶습니다
쓰지 않는다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는지
릴케는 젊은 시인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아이처럼 놀이하며
살아있음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연극배우는 관객 앞에서
한바탕 인생을 놀다가
장막 너머로 사라집니다
우리도 각자의 극장 속에 연기하는 배우가
아닐 까닭은 무엇입니까?
허공 바라보던 눈을 감을 때
남쪽으로 뻗어나간 가지 아래서
깨어날지도 모르지요
힘겹고 치열하다 말하는 세상
막이 내려오기 전까지는
축제를 즐기는 아이처럼 살고 싶습니다
2. 원작시의 배경
'이 세상은 감쪽같은 거짓말이자 꿈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책이 많지. 크게 실감하진 않지만.
개중 가장 와닿는 말은 '모두가 각자의 인생을 연기하는 배우'라는 말이었다. 가끔은 주인공 역할에 너무 몰입해서, 내 아름다운 인생 이야기에서 말 안듣는 조연을 치워버리고 싶은 충동이 드는 것처럼 말이다. (없애겠다는 말 아닙니다!)
우리는 간혹 아이/젊은 시절을 동경한다. 작년에 나온 재쓰비의 노래 '너와의 모든 지금' 가사가 잘 보여준다.
말도 안 되게 싱그러웠어
뭘 해도 됐던 그 나이엔
이유 없이도 특별했었지 그땐
그게 난 그리운 거야 아마
- 재쓰비「너와의 모든 지금」
노래 가사는 참 멋진 시야~
3. 합평시
아이처럼
아이처럼 살고 싶습니다
빨간 망토를 두른 채 하늘을 날며
바다를 표류하는 침대를 저어가고 싶습니다
쓰지 않는다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느냐고
릴케가 젊은 시인에게 물었다지만
놀이하듯 살아있음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연극의 막이 내려오기 전까지는
아이처럼 숨 쉬고 싶습니다
나는 다 컸다고들 하지만
여전히 아이로 살고 싶습니다
↓
아이처럼 살고 싶습니다
-1연
1연부터 조오금 고민이 된다. 난 아이'처럼' 살고 싶은게 아니라, 말 그대로 애가 되고 싶은 거였는데. 허헛^^
현실 반영에 충실한 것도 좋지만, 난 상상력이 강하게 작용해도 된다고 생각해... 몸이 컸고 나이가 들었다고 '어른'이라고 하는 것도 외부의 기준 아닐까..?

시인이라면 나만의 세계를 가질 수 있는 거 아니겠어?^^ 하고 생각해본다.
나는 아이처럼 놀이하며
살아있음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
놀이하듯 살아있음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 4연
와중에 여기다가는 '아이처럼'이라고 적어놓았다. 나란 사람...
그래도 교수님께서 여기는 빼주셔서 다행히 일관성을 지킬 수 있겠다. (교수님 감사해요^^)
나는 사는 게 놀이 그 자체가 됐음 좋겠다. 이 뽀로로 인간상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주제를 너무 어렵게 골라버렸군.
연극배우는 관객 앞에서
한바탕 인생을 놀다가
장막 너머로 사라집니다
우리도 각자의 극장 속에 연기하는 배우가
아닐 까닭은 무엇입니까?
허공 바라보던 눈을 감을 때
남쪽으로 뻗어나간 가지 아래서
깨어날지도 모르지요
이 부분은 사실 남의 이야기나 고사성어 인용부에 가깝다. 그리고 시 전체가 '아이'를 담고 있는데 여기서는 '삶의 무상함'을 얘기하고 있어서, 주제가 안 맞다. 아마 합평에서는 이 점을 알아보시고 빼주신 듯하다.
의식의 흐름이라고 막 썼구만... 머쓱
힘겹고 치열하다 말하는 세상
막이 내려오기 전까지는
축제를 즐기는 아이처럼 살고 싶습니다
↓
연극의 막이 내려오기 전까지는
아이처럼 숨 쉬고 싶습니다
- 마지막 연
1행처럼 '놀이'의 반대편을 주목하면 대비 효과는 있겠지만, 여기서는 아이에게 조명을 비춰주는 것이 좋겠다. '아이처럼 숨 쉰다' - 함축적면서도 모호하지 않고, 상상을 자극하는 구절이 되었다.
'아이처럼', '아이로' - 이 표현상의 차이를 어떻게 다룰 수 있을까? 내가 원작시를 쓸 때도 첫 연을 제외하고는 무의식중에 '아이처럼'으로 썼는데, 사실 이 '처럼'을 붙이는 것이 쓰기는 쉽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것은 그냥 '아이'... '아이로' 이렇게 써도 좀 이상하긴 해. 어떡하지!
4. 최종 수정시
아이처럼
어른이 된 지 오래지만
아이로 살고 싶습니다
빨간 망토를 두른 채 하늘을 날며
바다를 표류하는 침대를 저어가고 싶습니다
쓰지 않는다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느냐고
릴케는 젊은 시인에게 물었다지만
나는 놀이하듯 살아있음을 말하고 싶습니다
연극의 막이 내려오기 전까지는
아이처럼 숨 쉬고 싶습니다
그냥 '처럼', '로' 둘 다 써보기로 하고, 연 구분도 조금 바꿔 보았다.
이번주는 합평시 외의 시를 혼자 고쳐보았는데, 여기서 많은 생각이 들었더랬지.
시 수업에 제출하는 시는 물론 수정을 좀 하지만, 완벽하게 수정을 마치고 보낸다! 이렇게 하진 않았다. 교수님께서 맞춤법을 많이 봐주시기도 하고, (지금은 안그러지만) 잘려 나가는 부분이 많을까봐 일부러 길게 쓴 적도 있고.
어쨌든 교수님께서 검사를 해주시니 마음 편히 시를 제출한 적이 많았고, 나는 시를 참 편하게 썼구나... 싶었다.
혼자 수정한 후기는 다음 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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