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광고와 거리두기)
밀린 시 창작 수업 글을 쓰면서 느끼는 점.
내 시 열어보기가 겁난다..ㅋㅋ
1. 원작시
착각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몸부림치며 살아온 당신에게
냉혹한 세상에도 따뜻함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적잖은 날을 노력했지만
당신이 쓴 잿빛 안경을
벗겨낼 수는 없었습니다
당신의 구원자가 될 거라고
굳게 믿은 적이 있었습니다
2. 원작시의 배경
'고생이 남기는 결과'에 대해, 조금 다른 생각을 갖게 한 사람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고생을 많이 했다고 말한 그 사람은, 사고방식이 나와는 아주 딴 판이었다. '세상은 싸움터, 죄다 못 믿을 사람'이라는 관념이 너무 강해서 나와 충돌이 잦았다.
그 딱딱한 시각을 바꿔주려 부단히 애썼다. 그리고 변화에도 무게를 달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단 1그램도 변하지 않았다. 관계가 정리된 후, 그 노력이 허울 좋은 영웅심리였단 걸 깨달았다.
3. 합평시
착각
몸부림치는 당신에게
따뜻한 바람 불 때도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당신 곁을 서성이면서도
미처 해주지 못한 말,
잿빛 안경을 벗겨주지 못했습니다
당신을 꺼내줄 수 있다는 믿음마저
봄바람이 데려가버렸습니다
4. 합평시 뜯어보기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몸부림치며 살아온 당신에게
냉혹한 세상에도 따뜻함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
몸부림치는 당신에게
따뜻한 바람 불 때도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시는 이렇게 '옛날 옛적에~' 같은 말 안 쓴다고... 수업 중에 들었던 것 같다. 이야기식 도입이 아닌,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기!
나는 '냉혹한 세상'을 쓰고, 뒤에다 '따뜻함'을 넣어 대비 효과를 생각했는데, 이 부분은 삭제되었다.
늘 어려운 지점이다. 학창 시절 교과서로 시를 배울 때 대비, 대조와 같은 효과를 자주 배우는데, 이 기억 때문인지 불필요한 수식어를 넣곤 한다. 그리고 교수님께서 자주 잘라주신다.
적잖은 날을 노력했지만
당신이 쓴 잿빛 안경을
벗겨낼 수는 없었습니다
↓
당신 곁을 서성이면서도
미처 해주지 못한 말,
잿빛 안경을 벗겨주지 못했습니다
시에서는 '노력'과 같은 직관적이지만 모호한 단어는 잘 쓰지 않는다. 게다가 한자어. 이렇게 한 단어 넣었을 때 여러 의미를 퉁치기 좋은 '노력'을 지우고, 조금 다르게 표현해 주셨다.
당신의 구원자가 될 거라고
굳게 믿은 적이 있었습니다
↓
당신을 꺼내줄 수 있다는 믿음마저
봄바람이 데려가버렸습니다
음, 구원자라는 말은 일상에서 잘 안 쓰는 단어긴 하지. '믿은 적이 있었다'라는 건, '믿음이 깨졌다'와 똑같으니까. 믿음을 봄바람이 데려갔다 - 참 좋은 표현이야~ 하지만 난 가을바람도 좋을 듯한데.. 음...
5. 최종 수정 시
착각
몸부림치는 당신에게
따뜻한 바람 불 때도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당신 곁을 서성였지만
잿빛 안경을 벗겨주지 못했습니다
얼음 벽을 깰 수 있다는 믿음마저
봄바람이 데려가버렸습니다
2연을 더 잘라버렸다. '미처 해주지 못한 말, '이라는 것도 좀 모호한 듯해서. 아마 시가 너무 짧아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넣어주신 거 같은데, 연이 짧아지더라도 좀 더 깔끔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3연에서 봄바람을 가을바람으로 바꿔봤더니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연 전체에 '당신'이라는 단어가 들어가길래, 3연에서는 뺄 겸 1행을 완전히 바꿔 썼다. 1연에서 사라진 '냉혹한 세상'을 대변하기도 하고. 음, 난 최종시가 마음에 드는 걸!
저번 글에서 합평시 외의 시를 혼자 고쳐보면서, 그동안 시를 참 편하게 썼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썼지.
혼자 수정하니 네이버 국어사전을 수시로 들락거리게 되었다.
띄어쓰기는 블로그 맞춤법 기능을 많이 활용했는데, 왠지 불안한데...? 싶은 것은 꼭꼭 사전에 검색해 보았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국어사전에서 인용된 예문의 띄어쓰기를 많이 따랐다.
그리고 한자어/순우리말! 여기서 제일 오래 걸렸다. 사전은 유의어 탐색 기능이 있으니까, 한자어밖에 생각이 안 날 때 도움을 많이 받았지.
합평 땐 꼼꼼히 수정하지 않기도 했던 모습이 떠올라서, 많이 반성했다. 반성 후 2주 동안 쉬어간 다음, 봄학기 마지막 수업날에 내는 시는 손을 좀 많이 보았다. 그리고 교수님께서 '이전에 쓰던 시보다 훨씬 낫다.'라고 칭찬하셨다.
... 이건 수정을 많이 했어요...^^ 라고 말씀드리지는 못하고 씌익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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