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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뇌졸중에 걸린 신경해부학자 - [도서 :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by Bellot 2025. 1. 28.

이 책은 작년에 이미 두 번 읽었다. 왠지 한 번 더 읽어보고 싶어서, 작년보단 꼼꼼히 읽어보았다. 

처음엔 유튜브에서 영상으로 책 내용을 간단히 접했다. 

 

질 볼트 테일러 박사. 하버드대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신경해부학자로 활동하던 도중 뇌졸중을 겪었다. 원인은 좌뇌에 있는 선천적인 기형으로 인해 발생한 출혈 때문이었다.

 

아침에 출근하려고 일어났더니 머리 왼쪽으로 통증이 스친다. 내내 사라지지 않다가 샤워 도중, 똑바로 서지 못해 벽을 손으로 짚었다. 내 손이 어디까지인지, 벽이 어디부터인지 분간이 되질 않는다. 머리의 끊임없는 재잘거림이 뚝뚝 끊기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온마음과 몸으로 평화가 밀려들어온다.

 

다행히 수술도 잘 되었고, 어머니의 헌신과 사랑 덕에 8년 간 뇌의 기능을 꾸준히 회복하여 자신이 사랑하던 직업과 일을 되찾았다. 뇌졸중 때문에 겪은 생각의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책이라고 보면 되겠다.


1.  일체감

테일러 박사는 뇌졸중을 겪고 '나'라는 존재의 자각을 잠시간 잊었다.

우리 모두 서로의 일부이며,
우리 안에 흐르는 생명 에너지에 우주의 힘이 들어 있다는 한 차원 높은 인식을 얻었는데,
어떻게 내가 인류를 구성하는 단 하나의 개체란 말인가?

 

임사 체험 도서에서도 읽어보았지만, 개별성을 잊고 일체감을 느낀다는 표현은 참 신기하다. 티베트 스님들이 명상이 깊어지면 느끼기도 한다던데, 명상 중 자꾸 졸아서 때려치워버린 나에겐 영 멀어보이는 표현이다. '우리는 하나'라는 문구는, 내가 생각한 것보단 의미가 깊은 말이었나보다.

 

아, 명상 말고도 느낄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사랑'이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게 되면 일체감을 느낀다고. 어머니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감정이라고 했다. 

 

내가 느끼는 일체감은... 내가 좋은 것을 접하면 남에게도 똑같이 선물해주고 싶은 마음 정도? 내가 일체감을 거창하게 생각하는 걸까?  '합일'의 느낌이라는 거, 나도 한 번 느껴보고 싶다. (명상을 다시 시작해봐야 하나?)

 


2.  회복의 열쇠 - 사랑과 격려

어머니는 '어제는 내가 이것밖에 못했는데 오늘은 이만큼이나 했다' 는 식으로 이야기하기를 좋아했다.
우리는 매일 내가 거둔 성취를 축하하며, 내가 얼마나 잘 해내고 있는가에 대화의 초점을 맞췄다.
내가 할 줄 아는 것이 숨 쉬는 것 뿐이라면, 우리는 살아 있음 자체를 기뻐했다. 그리고 함께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테일러 박사는 뇌졸중으로 인해 언어로 사고하는 능력과, 외부 세상에 대한 기억을 상당수 잃어버렸다. 거의 아기가 되어버린 테일러를 되돌려놓은 사람은 어머니였다.

 

이전엔 한 번 들으면 기억했을 간단한 사항들을, 5~6번, 심하면 20번은 얘기해줘야 알아들을 수 있었다. 말을 막 트기 시작한 아이와 다름 없었지만, 어머니는 매일의 작은 성취를 꼬박꼬박 축하했다.

 

의사들은 뇌졸중 발생 후 6개월 동안 이전 상태를 회복하지 못하면, 이전의 기능은 영영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테일러 박사의 좌뇌는 8년 동안 꾸준히 회복되었다. 어머니가 성취를 꼬박꼬박 축하해주고, 살아 숨쉬는 자체에도 함께 기뻐한 것이 가장 큰 동인이 아닐까?

 

요 내용과 관련해서 최근에 본 네이버 웹툰.

 

최애캐의 고민상담소 - 07화. <기자매> 퀸패밀리와 고민상담

07화. <기자매> 퀸패밀리와 고민상담 07화. <기자매> 퀸패밀리와 고민상담

comic.naver.com


3.  말의 힘

그동안 나는 외부 세계에 대한 지각과, 우리와 세상의 관계가 신경 회로의 산물이라는 것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니 더없이 홀가분해졌다. 내가 살아온 시간 동안 나는 내 상상이 만들어낸 산물이었던 것이다!

테일러 박사의 뇌졸중은 좌뇌에서 발생한 출혈 때문이었다. 이 출혈이 언어 중추를 멈춰버렸다. 테일러 박사는 언어중추가 멈추자 언어의 형태로 유지되던 기억에 접근이 불가능해지면서, '나'라는 감각까지 함께 잊어버렸다고 말한다.

 

우리가 나 자신을 지각하는 것은 '언어'를 통해서이다. '나는 OOO이고, 어디에 살고 직업은 무엇이야.' 라는 형태가 대표적이다. 주변과의 관계는? '이 사람은 내 어머니이고, 저 사람은 내 아버지야.' 이것도 언어의 형태다. 요런 문장들로 이야기 한 편을 뚝딱 완성하면, 그것이 곧 '나'라는 관념이 된다.

 

말이 강력한 힘을 지녔다는 건 수도 없이 듣고 읽었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말을 쉽게 조절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한 번 해볼까'라는 다짐으로 쉽게 유지할 수 있는 습관은 아니었다.


나는 명상의 효과가 늘 궁금했다. 해봐도 큰 차이점을 모르겠달까. (도대체 그걸로 얻는게 뭐요?) 의외로 이 책에서 얻었다.

 

사실 얼마 전에 타이핑하다가 잠시 쉬고 싶단 생각이 들어서, 잠깐 힘을 빼보았다. 그랬더니 생전 경험하지 못한 고요함이 느껴졌다. 너무 빨랐던 머릿속 재잘거림도 느려지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타이핑하던 내 손을 쳐다보니 고마움이 느껴졌다. 이후로 그 감각이 다시 일어나진 않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평화를 살짝 맛본 경험이려나?

 

얻는게 아니라, 걷어낸다는 것이 맞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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