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여행을 다녀온 후, 도서관에 들러 시집을 뒤적거렸다. 좋은 시집이 많았지만, 뭔가 좀 더 재미난 시집 없을까? 하고 찾던 찰나에, '콩이나 쪼매 심고 놀지머' 라는, 경상도 사투리인 것이 분명한 제목을 발견했다. 첫장을 넘겨보니 이런 문구가 있다.
칠곡군 인문학도시 성인문해교육의 성과를 가감없이 드러내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아,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글쓰기 수업을 한거구나! 갑자기 호기심이 들불처럼 일어 덥석 집어왔다. 6·25 피란, 돌아가신 부모님, 노년의 외로움 등 다양한 주제가 담겨 있었다.
다만 맞춤법이 군데군데 맞지 않았는데, 일부러 그대로 실었다고 한다. 사투리나 실제 발음을 그대로 적어내신 분들이 많아서, 따뜻하고 정감 가는 시집인 동시에 귀중한 언어 자료로 남을 수도 있겠다.
나는 이렇게 간단하면서도 한 장면이 눈 앞에 그려지는 시가 참 좋더라. 우리 할머니가 나를 키우고 기다릴 때 이런 생각을 하셨을까? 싶어서 유달리 더 눈길이 갔다. 우리 할머니는 방울토마토를 자주 심으셨는데, 어린 손자 손녀가 와서 따라고, 익어도 안 따고 그대로 두셨다.
(경상도는 토마토를 도마도라고 한다.)
광복 전에 태어나신 분들 중, 특히 할머니들은 글자를 모르시는 경우가 많다. 옛날엔 여성에게 교육을 많이 하지도 않았고, 지금처럼 의무교육도 없었으니.
이제와 글을 배우려니 생각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는 분들이 있나보다. 젊었을 때 더 배우고 싶었던, 한탄이 담긴 시가 조금씩 보였다. 젊어서 글을 배웠다면, 시인으로 이름을 드날릴 수도 있었을텐데.
아마 이 시집이 두 번째로 낸 시집인 듯하고, 첫 번째는 아래의 「시가 뭐고?」라는 책이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성인문해교육의 성과로 시집 다섯 권이 나왔다고 한다. 다음엔 다른 시집도 읽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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